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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무계한 이태원 살인사건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2-01 (월)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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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동아일보>


[대한방송연합뉴스 오양심 주간]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홍익대 대학생이었던 조중필 씨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아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당시 18세)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둘은 이구동성으로 조 씨를 죽인 범인은 친구라며 자신은 구경만 했다고 주장했다.


칼의 소유자였던 패터슨은 흉기소지 혐의로 1년 6개월 구형 뒤 출소했고, 에드워드 리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에드워드 리는 감옥에서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99년 9월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것이다. 그때 사건을 담당한 박 검사는 두 사람이 공범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단정했고, 피해자 조씨 어머니 이복수씨는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지고 말았다. 2009년 9월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상영되면서 사건이 재조명을 받고 재수사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패터슨이 출국한 지 10년이 지난 2009년 9월, 한국 검찰은 미국 당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에서 검거됐고, 미국 LA연방법원은 2012년 10월 패터슨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지만, 패터슨은 범죄인 인도재판과 인신보호청원 등을 거듭하며 한국 송환을 지연시켜 왔다. 2014년 6월 항소심에서 이의신청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 패터슨은 더 이상의 인신보호 청원을 하지 않았고, 결국 국내로의 송환이 결정되었다.


‘이태원살인사건’은 범인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진범을 가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담당사건을 맡은 박 검사의 고집과 아집 때문이었다. 피터슨의 국내송환직후, ‘그 사건은 이미 다 잊었다. 내게 그 사건 관련해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는 그 검사는 지금 어느 기자의 글은, 변호사의 자격이 의심스러운 지금, 전북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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