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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수필] 우주를 담고 소리를 듣는 호박그림

기자명 : TQID 입력시간 : 2017-03-28 (화) 11:22


 

김용수.jpg

<김용수 시인>


호박에 우주를 담고 있는 미술품을 보았다. 점과 선 그리고 면을 교묘하게 이어가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호박도자기를 사용한 입체감 있는 호박그림은 어딘가 모를 정겨움이 묻어났다. 호화스럽지 않으면서 포근함을 안겨주고, 아름다움보다는 소박성과 믿음성으로 은근한 정을 느끼게 했다. 

 

흔히 “사람들은 호박꽃도 꽃이냐?”와 “호박처럼 생겼다”는 등 못생기고 못난 형태를 호박에  비유하면서 호박을 천대꾸러기로 여긴다.

 

그러나 호박의 삶은 고귀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고 가시넝쿨 밑에서도 줄기를 뻗어 황금빛 꽃과  황금빛열매를 맺는다. 어쩌면 호박에 얽인 전설처럼 황금 종을 만들려는 스님의 넋인지도 모른다.

 

호박의 전설은 인도에 믿음이 진실한 스님이야기다. 그의 소원은 황금으로 된 범종 하나를 만들어 놓고 죽는 것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시주를 받아 황금범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銅)으로 된 대형범종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은 터에 황금으로 대형범종을 만드는 일이란 극히 어려웠다. 결국 그 스님은 범종이 채 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기력이 쇠잔해서 죽고 말았고, 죽어서 부처님 앞에 가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생전에 종을 만들던 일을 고하고, 그 종을 완성할 때까지만 다시 인간 세상에 살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의 진심을 안 부처님은 다시 그를 인간 세상에 살도록 허락했다. 소원대로 환생을 해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세상은 예전에 살던 세상이 아니었고, 그가 만들다 만 종의 행방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부처님께 잠시 다녀오는 동안 인간계에선 벌써 1백년의 시간이 흘러갔던 것이다.

 

그는 그 종을 찾아 완성하기 위해 바랑을 걸머지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떠돌아 다녔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발밑에 자기가 만들던 종 모양을 한 황금빛 꽃이 있어 그 줄기를 따라 땅 속을 파들어 가니 바로 거기에 자신이 만들던 대형의 황금범종이 미완성인 채로 묻혀 있었다. 그는 그 종을 파내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을 시키고 어떤 소리가 나는가 싶어 쳐 보았는데 종에선 소리 대신 황금빛 꽃이 떨어지면서 누런 황금열매가 달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꽃들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호박꽃은 특이하게도 선을 추구하는 불경을 담고 있다. 못생기고 못났어도 시샘하지 않고, 아무리 험난한 곳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덕스러운 삶이다.

 

반기지 않는 꽃, 호박꽃은 황금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해 보이면서 친근감이 느껴지고, 어린 시절 고향풍경과 따뜻한 어머니 품이 그려진다. 더욱이 호박꽃이 질 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몸통을 살며시 오므리면서 줄기를 떠난다. 그것도 탐스런 애호박 하나를 남겨 놓고서 말이다.

 

모든 꽃은 아름다움이 생명이다. 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꽃 중에서도 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를 받는 꽃이 호박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박을 소재로 한 미술품이 탄생되고 있다. 갈대화가로 널리 알려진 손 준호 화백은 호박도자기와 함께 원으로 이어지는 세상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마도 원을 형상화한 우주를 둥글고 골진 호박에 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 화백이 그리고 있는 미술품에는 우주 속에  감춰진 신비스러운 소리까지 담고 있다. 즉, 호박 줄기가 뻗어가는 소리부터 꽃이 피고지고, 열매가 열리고 익어가는 소리 등 숨겨진 그 소리는 무수하다.

 

그의 작업은 우주의 4원소인 불, 물, 바람, 흙은 불로 시작되어 물- 바람- 흙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몸통이 깨지고 고통이 있어야 태양을 볼 수 있듯이... 씨앗의 몸통을 깨는 그 에너지! 생명력은 어떤 세계일까? 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은 철학적 관계망과 연결망을 태극의 선으로 변주시켜 보여준다고 했다. 움직임과 리듬, 삶의 변화와 발전 등  모든 것이며, 그 순간을 그려낸 그림은 인간과 자연사이의 거울로 우주를 포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氣의 변화와 변신의 과정을 새로운 이미지로 포착해내서 그 어떤 형상으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동그라미 속에 우주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렸듯, 호박그림에 우주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연현상에서 찾고 그 氣를 그림으로 표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떠난 예술성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언제나 사람과 연계한 사물을 대입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호박 삶은 곧잘 우리 사람과 많은 비유가 된다. 열매를 쪼개보면 그 내부가 어머니의 자궁 속과 흡사하고 씨앗에서부터 자라는 과정들이 인생역정과도 같다. 소우주와도 같은 사람의 몸과 호박은 닮은꼴이다. 진, 선,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호박그림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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