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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시) 국경을 넘어간 핸드메이드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10-28 (금) 12:59


국경을 넘어간 핸드메이드

오양심

 

어머니!

40년 전, 당신께서 자연으로 만들어 주신 흰옷을 입고 하늘을 날고 있어요. 그런데요. 일본으로 건너가는 비행기 안에서, 왜 알지 못할 감정이 솟구치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하늘로 올라가버린 지금에야 묻겠는데요. 그때 미영 밭에서 김을 맬 때마다 목화를 따면서도 간간히 하늘을 쳐다보며 왜 절감했나요. 무엇이 사무쳤나요?

 

미영을 따서 말린 후 방앗간에 가서 씨앗기로 씨를 빼냈지요. 활로 타서 껍질을 떨어뜨리고 솜이 피어오르게 한 후 고치를 말았지요. 물레질을 하여 실을 뽑고 나서는 시집살이 애환을 가락에 올렸나요? 가락옷에 감긴 실 뭉치를 댕이라고 하면서 무명 한 필에는 열개 댕이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날실 팔십 올이 한 새인데 굵기에 따라 새가 결정되는 일곱 새 아홉 새 열새라는 무명실을 줄줄이 낳았고요.

 

날틀과 걸틀을 고정시켜 베 날기를 한 날에는 날씨가 화창했어요. 날실의 잔털을 없애고 마찰에 견디게 하는 베매기를 하는 날에는 바람도 잦아들었지요. 날실을 바디에 꿰어서 한끝은 도투마리에 고정시키고 다른 끝은 끄싱게로 감아 팽팽하게 늘인 뒤, 날실의 표면에 풀을 고르게 바르더군요. 그 아래 왕겨 잿불을 놓아 잘 말려서 도투마리에 감아 베틀로 옮겼고요. 씨실 댕이에서 실을 잡아 꾸리로 감아서 북에 넣었지요

 

밤낮없이 베틀에 앉아 계신 당신은 틀림없는 선녀였어요. 잉아에 실을 걸고 개톱 대를 말코에 끌어 맨 다음, 앉은 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걸고, 베틀신을 신고 앞뒤로 당기면 잉앗실이 올라갔어요. 날실이 상하로 갈린 그 사이로 북을 좌우로 번갈아 넣고 바디로 치면 무명이 짜졌지만, 당신은 날줄의 마른 부분을 자주 눈물로 적시더군요. 저는 베 짜는 소리에 잠이 들었고 아침을 맞이했지만 당신은 언제 주무셨나요?

 

미영으로 옷을 지을 때는 물에 담가서 날실 날기 때 먹인 풀을 깨끗이 뽑아냈지요. 콩대로 만든 양잿물에 삶아서 빨랫줄에 걸어 말린 뒤에는 다시 쌀풀을 먹여 양지에서 말렸고요.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서 다듬이질을 했지요. 봄가을옷은 겹으로 여름옷은 홑으로 겨울옷은 두텁게 솜을 넣어 지어주셨어요. 당신의 땀으로 만들어주신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으면 저절로 목에 힘이 들어갔어요.

 

올해는 2015한일국교정상화 오십 주년인데요. 구월에 국회의사당에서 제가 쓴 시에 일본 여인의 서화를 접목해서 전시한 행사를 했어요. 근데요. 한 달 후인 시월에 일본 고야산과 고야산대학교에서 기별이 왔어요. 한국행사장에 걸어두었던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특별기획, 한일여류문화교류시서화전이라는 현수막을 그대로 걸어놓고 우리나라의 한복을 입은 그대로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니까요?

 

제가 어떻게 그런 장한 일을 했냐고요? 저도 한일관계개선의 선구자가 되어 일본 땅으로 초대받아 갈 줄은 몰랐어요. 목화 꽃이 필 때마다 당신 생각뿐이었는데 한 땀 한 땀 눈물로 지어주신 무명치마저고리를 입고 국경을 넘어가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한국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네요. 그러고 보니 잠시 이 세상에 나의 어머니로 오셨다가, 날개를 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당신은 하나님의 따님이셨나요?

 

고바야시후요와함께 .jpg

<한국의 오양심시인(왼쪽)과 일본의 고바야시후요 시서화가(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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