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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수필) 충무공의 호남유애정신을 기리자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9-29 (목)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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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충무공의 호남유애정신을 기리자

 

가을비가 내란다. 왠지, 이 빗속을 걸으며 충무공의 湖南遺愛情神을 기리고 싶다. 특히 정유재란 말, 광양만과 해룡면 일원에서 조, , 일의 3국이 치열하게 싸웠던 순천 왜교성 전투의 진상을 재조명함은 물론 충무공의 휘하에서 목숨을 잃었던 수군들과 이곳백성들의 넋과 혼을 달래는 충혼정신을 기려야 한다. 충무공이 유독, 호남을 사랑하고 호남백성을 사랑했던 것은 다름 아닌 대나무정신과 뻘의 정신 그리고 황토정신인 호남의 3대정신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대나무정신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대나무로 만든 죽창을 들고 싸움터로 나서는 충의정신에서 비롯됐으며, 태평시대에는 대금, 중금, 소금, 피리 등 악기로써 제구실을 단단히 했었다. 또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로 참된 의식을 상징했었다. 요약하면 난세엔 죽창을 들고, 호시절엔 피리를 부는 정신이다. 이러한 대나무정신은 인심이 후하고 풍류를 좋아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남도민의 기질이다.

 

갯벌정신은 먹이사슬의 근원이다. 뻘에는 꼬막, , 바지락을 비롯한 망둥어, 짱뚱어, 낙지 등 무려 260여 종의 바다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다. 뻘이 오염되면 바다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따라서 뻘은 갈대와 함께 바다오염정화기능과 태풍이나 홍수의 조절기능가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인지, 옛 사람들은 갯벌을 자연의 콩팥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콩팥을 지닌 호남이기에 충무공은 호남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황토정신은 농사에서 비롯됐다. 남도사람들이 매우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황토다. 황토는 곧 흙으로 기인된다. 객토를 할 때 반드시 황토를 쓴다. 최근에는 적조오염퇴치에 황토를 살포하고 있다. 그것은 황토가 지닌 효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같이 황토는 호남의 농경문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황토는 호남의 원초적 토속문화를 잉태한 근원이 아닐 수 없다.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기록으로 남긴 어록이다. 두만강과 허천강이 마주치는 함경도 국경 수비대 동구비보에 부임한 초급장교시절 함경도일기를 썼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묶어 7년간에 걸친 조일전쟁의 난중일기를 남겼다. 어쩌면 그는 무인이면서도 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임진년 개전초기. 한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 경향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승병이 일어났다. 이러한 의병들은 제 고장 지키기에 급급했지만 고경명, 김천일, 김덕령 등 호남의 의병장들은 제 고장을 넘어서 경상도 충청도에서 왜군을 맞이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러한 호남인의 넓은 마음을 영산포 장터바닥 멍석에서 충무공은 깨달았다고 한다.

 

게다가 명량해전에서 '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고 살기를 바라면 죽는다.'고 부하를 독려하며 치른 전투는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울돌목에서 궤멸시킨 충무공은 어느 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 몽탄과 학다리를 지나 영산포에 닻을 내리고 장터에 들렸다고 한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장터에 들린 충무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난리 통에 봉두난발을 한 백성들이 새끼줄에 발목이 묶인 닭과 콩, , , 수수 등을 한 두 됫박씩 팔고 있는 장터에 평복으로 들어간 장군은 주모가 내주는 국밥을 멍석에 앉아 먹었다. 이렇게 호남인과 호흡을 같이 한 이순신은 말린 토란대와 고사리에 선지를 넣고 끓인 국밥이 맛있게 먹었다. 두부도 몇 점 떠있는 장국밥에 밥을 말아 먹었으며 반찬으로 나온 무짠지와 미나리 무침이 좋았으며 수행한 안위는 세 그릇을 비웠고 모처럼 포식했다, 라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장군은 허기진 배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호남인의 넉넉한 인심을 가슴 가득 채웠다.”고 묘사했다.

 

충무공은 또 호남인심에 협조를 받아 군량을 비축하고 전선(戰船)을 건조하여 패퇴하는 일본군의 묵을 죄는 노량해전을 치르기 위해 고금도로 수영을 옮길 무렵에는 판옥선 80, 협선 200, 장졸 8000여명과 화약, 총통, 화살을 당포해전과 한산 대첩을 이끌어냈던 임진년 한산 통제영 수준으로 군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남도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15977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지난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조선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구례 석주관을 시작으로 명량대첩지인 해남, 진도 울돌목까지 이르는 44일간의 여정을 담은 이순신, 명량 가는 길을 펴냈다.

 

내용은 조선수군 재건의 과정을 중심으로 11개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지역 등을 지나며 무기, 군사, 군량을 모아 명량대첩의 승리에 이르는 이순신 장군의 굳은 의지와 호남민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전쟁 중에 어머니를 여의고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는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조선수군의 장군이자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도 들어있다.

 

아무튼 충무공의 호남유애정신은 호남백성들의 충의정신과 구국정신인 나라를 위해서는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희생정신으로 비쳐진다. 지속적으로 충무공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역사체험을 운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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