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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수회장, 광명농악보존회의 우리가락 신명난 스토리텔링으로 흥미 살리자

-30여 년간 광명농악 발굴보존․전수․전승에 힘써와-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6-28 (화) 15:35


임웅수회장, 광명농악보존회의 우리가락 신명난 스토리텔링으로 흥미 살리자

-30여 년간 광명농악 발굴보존전수전승에 힘써와-

 

[김동국기자]지난 201411월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농악(農樂)5천 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굳건하게 버티며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 쉬는 혼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적 생활예술로 농민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마을마다 전통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적 축제를 주도하기도 했다. 특히 농사철에는 두레농악으로 흥을 돋우어 바쁜 농사일의 고단함을 달랬고, 동제 때는 축원농악, 명절 때에는 오락으로 전승해 왔으며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축제였다

 

특히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0호인 광명농악은 수도권 서남부 경기도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약 450여 년 전부터 철산리, 소하리, 아방리 등지에서 성행했으며, 1991년경부터 발굴을 시작, 1994년 민속예술축제를 계기로 재현한 경기지방의 전통적인 농악이다. 주요 특징은 전체적인 놀이의 흐름이 빠르고 박진감 있으며, 판굿의 구성이 변화무쌍해 지친 심신을 풀어주고 신명 나는 흥을 선사한다. 또한, 광명농악은 광명농악보존회(회장 임웅수)를 통해 그 어느 도시보다 왕성한 활동으로 건전한 놀이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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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농악 인간문화재 임웅수 名人>

 

한편, 광명농악보존회에서는 매년 10월에 광명농악 대축제를 개최, 개폐막식을 비롯해 각종 농악경연대회, 전국 학생농악경연대회 등 풍성한 농악의 축제로 우리 전통 민속놀이인 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충현고등학교 농악반을 운영, 광명농악의 후예들을 길러내며 전통 연희단 광명을 운영하면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고 있다.

 

광명시를 넘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한국농악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임웅수 명인은 “30년 넘게 많은 제자들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농악을 계승발전시켜왔다, “한국농악은 우리 문화의 자존심으로서, 우리의 것을 우리가 전승·보존·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이제 우리 전통농악이 몇몇 사람들이 이어가는 문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가 신명을 느끼는 농악으로 자리매김해 더 나아가 세계인류 무형유산의 으뜸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1991년 광명농악에 입문한 이래 전수교육 조교를 거쳐 30여 년간 광명시에서 전통 농악 보급에 힘써온 광명농악의 자존심 임웅수 명인은, 한국농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 왔으며, 민족의 혼, 생명의 소리를 담아낸 농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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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무형문화재 제20호 흥겨운 광명농악

 <악학궤범> 서문에는 우리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든 것이요, 공허한 데서 출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감동하여 움직이게 하고 혈맥이 통하고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바른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교화해서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여겼다.

 

특히 농악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자 음악인 동시에, 농사일로 지친 농민들의 심신을 풀어주는 원동력이었다. 마을 잔치 때 흥을 돋우던 음악으로서 농악 이상의 것은 없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협동·단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농악 속에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출생에서 성장 과정,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신명 나게 두드렸다가 그것을 풀어내고 감는 과정을 되풀이 하다 보면 애환과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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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 농악에 비해 조금 늦은 출발을 한 광명농악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는 임웅수 회장의 남다른 희생과 노력,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광명농악은 1994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5년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후 광명농악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7930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1998년 광명농악보존회가 설립됐으며, 1999년부터 광명시 정월대보름축제를 주최·주관해 광명시의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을 알리는데 기여해 왔다. 이와 동시에 충현고등학교 농악단을 비롯해 광명시 각 지역에 농악단을 창단, 대보름 축제 및 광명농악 발표회를 통해 전수·전승·보존에도 힘쓰고 있다.

 

광명농악보존회 임웅수 회장은 오늘날까지 아방리줄다리기, 아방리농요, 구름산도당놀이, 철산리쇠머리디딜방아액막이놀이 등을 재현 복원시켜 전국에 광명농악의 우수성을 알리고 뿌리를 내리는데 일조해 왔으며, 6번의 대통령상 수상과 함께 1,600여 회의 국내외 공연을 통해 광명농악의 민속놀이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바탕을 마련했다.

 

임 회장은 국악공연은 소리로 듣고 눈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내용, 즉 스토리라는 재밌고 중요한 요소가 있다, “대중과의 만나는 빈도를 넓히고, 스토리 텔링을 통해 국악을 올바르게 이해시켜 재미를 주는 요소를 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과 들에 있는 작은 나무와 풀도 각기 이름이 있듯이, 몇몇 국악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국악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름 없이 명맥을 이어가는 분들에게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 “농악에는 공동체와 함께 두레 품앗이가 있고, 소통이 있고, 나눔이 있었다. 심지에 어깨에 올라가는 새미에게도 공동분배를 했다. 그것이 자연스레 복지로 연결되는 농악의 정신이고 민족의 삶이다. 이름 없이 곳곳에 흩어져 어렵게 지내고 있는 국악인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국악정책이 필요하다고 국악협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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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농악보존회 임웅수 회장은

임웅수 회장의 농악과 인연은 성남중학교에 입학하고 민속놀이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지금까지 한 길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그의 활동과 성과가 나타난 것은 공주농업고등학교 재학 시 전주대사습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장원 수상, 졸업 후에는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탁월한 재능을 돋보였다. 그리고 한국 민속촌 정인삼 선생께 직접 사사 받으며 예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한국민속촌 농악단에 입단해 활동하면서, 충남대 농과대 학생들과 연산상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좋은 성적을 거둬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군에서 전역 후 863월 서울 중구 신당동에 마당풍물놀이를 창단하면서 진도북춤 보유자인 박병천 선생과 김복섭 선생을 만나 소리와 장단을 배우게 된다.

 

그의 농악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는 1986년 아시안 게임으로, 그를 통해 아시아 각국에 우리 민속예술이 전파되었고 세계적으로도 조명을 받게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식전행사에 우정 출연하면서 여의도 특설무대에서 가수 김수철과 하루 3회씩 17일 동안 세계인들 앞에서 공연하는 행운을 얻게 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후, 이춘목 선생과의 인연으로 광명에 자리를 잡게 되어 시민국악단에서 활동하며 초등학교 교사들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농악 지도를 하면서 광명농악에 대한 자료를 조사발굴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광명농악의 뿌리를 찾아내는 일에 앞장서 마침내 1994년 광명농악을 복원하게 된다.

 

순조롭게 국악의 길을 걸었던 그는 잠시 동안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사외이사 영입’, ‘국악대 학생들의 이사회 참여’, ‘대대적인 정관 개정’, ‘협회사무실 개방등 파격적인 쇄신안을 내놓는 등 국악계 혁신적 개혁을 주장, 신선한 반응을 얻으며 대한민국국악협회 이사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그는 근소한 표차이로 마음을 접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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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웅수 회장은 말한다. “한국국악협회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 곳이다. 한류의 중심 역할에 국악이 빠질 수 없다, “송소희 같은 국악 스타들을 양성하고 또 대한민국 홍보사절단을 만들어 지구촌 곳곳에 대한민국 국악을 알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정부를 설득해 국악의 자존심을 찾고, 기업을 추동해 국악과 기업이 상생하는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희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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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회장의 말처럼 우리 소리와 우리 가락, 그 내면에 감춰진 감칠맛과 정서를 이해하는 데에는 스토리 텔링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흥미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또한, 국악인들은 전통을 고수하되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며, 외래문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우리의 전통음악이 세계 속에서 으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취재 사진/ 김동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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