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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소리] 아버지를 주제로 한 시모음/박목월/ 마종기/ 정호승/ 조운/ 신경림/ 나태주/ 오양심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2-03 (수) 17:01



눈물.jpg

(시)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1915.1.6.~1978.3.24)은 본명은 영종이며, 경북 경주 출생이다. 1935년 대구 계성중학을 졸했다. 1939년 문장이라는 문예지가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3년 시전문지 심상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박목월의 가정이라는 詩는 1968년 출간된, ‘경상도의 가랑잎’이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가장으로서 고달픈 아버지의 삶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등이 켜질 무렵에 귀가한 시인이 현관에 놓인 크고 작은 크기의 아홉 켤레 신발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쓰럽다. 십 구문 반이나 되는 자신의 신발과, 육 문 삼밖에 되지 않는 막내둥이의 신발을 비교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의 삶은 고달프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 오양심>
 

박꽃
마종기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서로 딴 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무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내 아이들은 박꽃이 무엇인지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하나씩 나이 차서 집을 떠났고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떨어져 있는 것이 하나 외롭지 않고
내게는 귀하게만 여겨지네
 
아버지의 가을
정호승


아버지 홀로
발톱을 깎으신다

바람도 단풍 든
가을 저녁에

지게를 내려놓고
툇마루에 앉아

늙은 아버지 홀로
발톱을 깎으신다

 
아버지 얼굴                           
조운


내가 그림을 배워
아버지를 그리리라

한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거니

네 살에 본 그 얼굴이 아버진지
아닌지.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특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겨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우리 아버지를 찾습니다                 
나태주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습니다
나이는 70세
약주를 너무 많이 잡수셔서
기억상실증에 걸리셨는데
어느날 동네 이발관에 가셨다가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합니다
집 번지수도 대지 못하고
전화번호도 대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밥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신 분이십니다
흰 바지저고리에 흰 고무신
나무막대를 지팡이 삼아 짚고 나가셔서
벌써 보름째 종무소식입니다
방송에도 내고 신문에도 내고
광고지를 만들어 여기저기 붙여도 보았지만
별무효괍니다
양로원에도 가보고 시장에도 가보고
정신이상자 합숙소에도 가보았지만
안 계셨습니다
세상에 노인들은 많고 많아도
정작 아버지는 안 계셨습니다
집을 나가실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사시던 고향에서
이사 안 오시겠다는 걸
좀 잘살아보자고
대전시외 개발예정 지구로 이사 와
약주가 더 느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이 좋다 하시는 분을
억지로 모시고 이사 온 게 불찰이요
술보다 더 좋은 것을 마련해드리지
못한 것이 불효이지요
나이는 70세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집 나가신 분 아버지를 찾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찾습니다.


아버지
오양심


우리 아버지는 우체부가
아니라 배달선생님이었어요
하루에 20킬로씩 두 발로 걸어서
36년 동안 수십만 통이나
편지를 배달했어요.


문맹자에게는 글을 가르쳐 주고
노인에게는 편지를 써주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힘든 일
궂은일은 도맡아 하여 인근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어요.


바빠도 굳세어도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어린 육남매 앞날을 걱정했어요.
울지는 않았지만 마시고 난
술잔에는 매번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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