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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소리] 석류 시 모음/ 조운/ 이가림/ 노향림/ 복효근/ 나희덕/ 유수한/ 이문재/ 오양심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2-03 (수) 14:56



석류.jpg

(시)

 

석류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시조시인 조운은 1900년 6월 26일에 전남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구름다리 옆집에서 태어났다. 1940년부터 집 앞의 구름다리를 딴 운(雲)을 필명 겸 본명으로 써 왔다. 네 살 때 일찍 부친을 여의고 7남매 중의 외아들로 자란 귀공자풍의 선비였다.
  조운 1924년 말 《조선문단》에 「초승달이 재넘을 때」 등 자유시 3편을 발표하여 문단에 진출했다. 또 이듬해에는 같은 학교에서 동료 선생으로 근무하던 박화성을 춘원에게 주선하여 《조선문단》에 작가로 등단시키는데 도움을 줬다.
  그 무렵에 그는 만주여행 때부터 사귀어 온 서해(曙海) 최학송을 한살터울 누이인 분녀와 혼인시키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뿐만 아니라 동향출신으로서 월북한 시조시인 조남령(曺南嶺)을 배출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해방 직후에는 영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았고, 문학가동맹에 가입한 바 있다. 그리고 1947년에는 가족을 데리고 상경하여 동국대에 출강하며 시조론을 강의했다. 『조운시조집』을 간행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하지만 1948년 정부수립 직후에 가족과 더불어 월북하였다.
  북한에서는 황해도 대표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또 고전으로 「춘향전」을 연구하였으며, 박태원과 함께 『조선구전민요집』, 『조선창극집』을 출간했다. 그러다가 1956년의 이태준 계열 숙청 이후 몰락했다가 구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인민시인 신재효」(1957), 「아브로라의 포성」(《조선문학》, 1957), 「평양판관」(《조선문학》, 1958) 등을 발표하였다.
  조운의 작품집으로 월북 전에 펴낸 『조운시조집』(1947)이 있고, 최근 고향의 유지들이 출간한 『조운(曺雲)문학전집』(1990)이 있다. 새 전집에는 월북 전의 시조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시ㆍ시조ㆍ산문 등) 65편을 포함하여 130여 편이 실려 있다.
  조운의 시작품들은 대체로 단아하다. 전통적인 정한의 세계를 즐겨 다루고 있어 돋보인다. 남다른 언어의 조탁에다 섬세한 개성미를 지닌 채 공감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전혀 이념적인 색채가 없고, 자연이나 인간의 서정을 읊은 순수문학성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조시인 조운은 석류를 보고 “빠개 젖힌 이 가슴”이라고 썼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옷고름을 풀지 않아도, 천둥과 번개를 치지 않아도, 잘 익은 석류는 제 가슴을 빠개고 풀어헤친다. 그렇게 제 안에 숨어있는 붉은 알알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보소라 임아 보소라.”석류는 알알이 무르익은 사랑하는 마음을 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시인, 오양심>


석류
이가림

 

언제부터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석류
노향림

 

남요한 신부님이 기거하는 집 안마당엔
힘에 겨워 잎도 못 피우는
석류나무 한그루
불모의 시간을 산다.

해수로 쿨룩대는 기침소리 없는 날
이끼 낀 양기와 지붕 아래
시름이 파랗게 우러난
햇볕이 숨어 들어온다.

사철 비어 있는 댓돌엔
낡은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하다.
하늘이 발목을 넣고
신어보는 중이다.

뒤돌아보면
하눌타리 꽃들이 늦바람에
푸석푸석한 얼굴 내다 말리고 있는
담장 너머 손님 없는 텅 빈 열차 하나 지나가는 중이다


석류
복효근

 

누가 던져놓은
수류탄만 같구나
불발이긴 하여도
서녘 하늘까지 붉게 탄다
네 뜰에 던져놓았던
석류만한 내 심장도 그랬었거니

불발의 내 사랑이
서천까지 태우는 것을 너만 모르고
너만 모르고...
어금니 사려 물고
안으로만 폭발하던 수백 톤의 사랑
혹은 적의일지도 모를

 

석류
나희덕

 

석류 몇 알을 두고도 열 엄두를 못 내었다
뒤늦게 석류를 쪼갠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문처럼
앙다문 이빨로 꽉 찬,
핏빛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네 마음과도 같은 석류를

그 굳은 껍질을 벗기며
나는 보이지 않는 너를 향해 중얼거린다

입을 열어봐
내 입속의 말을 줄께
새의 혀처럼 보이지 않는 말을
그러니 입을 열어봐
조금은 쓰기도 하고 붉기도 한 너의 울음이
내 혀를 적시도록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게

 

석류
류수안

 

먼 산, 가까운 산
울리던 우레 소리 멎어
문 열어보니

빈 뜰
저만큼
함께 손정에 들었던 중은 어디로 가고

붉은 촛불 빛만 외로이 남아
선방 벽 뚫고 나가려 사방 찬 벽에 온통
실금을 내가고 있네

 

석류
이문재

 

인사동에 나갔다가 리어카 위에 놓인 석류송이들을 보았다
매우 젊은 아가씨 서넛이서 아, 석류 좀 봐, 하면서 달겨 들
었다 석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이 민망해 보이기
도 했다 리어카 위에 고개를 수그리는 젊은 여자들의 머리타
래가 석류 알을 몇 개 건드렸다 간지러워 보였다

인사동과 석류는 제법 어울리는 듯했지만, 저 미니스커트
들과 석류는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다 저 젊은 여자들 속에
석류처럼 익은 게 무어 있을까 중얼거리는데 그 중에 누가
오이비누를 썼는지 오이냄새가 확 퍼졌었다

나는 석류 한 송이를 집어 들어 안전핀을 뽑았다 하나 둘
셋, 하고 던졌다 수류탄은 조준한 곳에서 정확히 폭발했다
곳곳에 파편이 튀었다 초가을 입구, 인사동 입구는 아수라장
이었다

 

석류
오양심

 

한 가닥 실을 꿰어
오천년을 거슬러 오른다
우리아버지 우리할아버지
단군할아버지까지
수복강녕과 부귀다남이
안팎으로 수놓아진
주머니 허리춤에
달고 다니신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태(胎)를 찾아 나선다
우리어머니, 우리할머니
삼신할머니까지
석류꽃보다 더 붉은
꽃물 속 것을 차고 다니신다
우리 집 만복을 가져다 준
복주머니가 바로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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