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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소리] 자유 / 폴 엘뤼아르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1-27 (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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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폴 엘뤼아르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슨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바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폴 엘뤼아르(1895.12.14 ~ 1952.11.18.)는 파리 교외의 생드니 출생이다. 20세기 프랑스의 대표 시인인 엘뤼아르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정치색을 강하게 품은 작품을 썼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폴 엘뤼아르는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평화와 자유, 정의를 관통하는 그의 대표작은 ‘자유’이다.
  프랑스의 폴 엘뤼아르 못지않게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 뜨거운 열망으로 노래한 1970년대의 기념비적 작품이 있다.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이다. 10월 유신이라고 불린 비상체제하에 질식할 듯한 시대적 상황을 개인적 서정으로 육화시켜 문학적 감성으로 선명하게 집약시킨 사회참여시이다.
  불미스럽게도 한국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프랑스의 저항시인 ‘폴 엘뤼아르’가 쓴 ‘자유’의 표절작이라는 주장이, 시인 노태맹에 의해서 어느 지방지에서 문제 제기가 되었다. 김지하가 엘뤼아르의 시를 대 놓고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시가 워낙 유명한 만큼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표절작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노태맹 시인 외에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에 대해서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시가 아니라, 가슴에 피를 찍어서 한자한자 써내려간 민주주의라는 뜨거운 열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양심시인. (前)건국대학교 통합논술 주임교수>


<참고하기>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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