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 최광임(1967~ )
넓은 냄비에 카레를 끓인다
불꽃의 정점에서 꽃이 핀다
굴참나무 아래 쪽빛 드는 구릉 사이
타닥타닥 산수유꽃 피어나듯
약한 불꽃 가장자리에서부터 오르는 기포
철판도 더 뜨거운 한쪽이 있다니,
나도 그대 앞에선 뜨거운 꽃이지 않던가
세상은 자꾸 배면을 더 할애하지만
억척스레 빛을 끌어다 덮고 열리는 몸
불판 중앙으로 냄비의 위치를 바꿔놓는다
한동안 노란 속살까지 차오르는 뜨거움
누구의 한때도 뜨겁지 않는 삶은 없다
산수유 산지로는 구례 산동면과 산내면이 유명하다. 산동은 1000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시집오면서 산수유 묘목을 갖고 와 심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000년 넘은 ‘할머니 나무’(始木)에 카레를 끓이면서 산수유꽃을 피워낸 사람은 언어의 마술사 최광임 시인이다.
철판도 더 뜨거운 한 쪽이 있고, 꽃도 뜨거운 쪽과 덜 뜨거운 쪽이 있기 마련이다. 타닥타닥 산수유 꽃이 피어나듯 속살까지 뜨거운 카레를 감수성에 비유를 한 발상이라니, 죽은 사물을 의인화시켜 새롭게 살려내는 발상이 바로 시다.
<오양심시인. (前)건국대학교 통합논술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