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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수필) 기러기 재를 넘다가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6-09-21 (수) 07:39



김용수.png

              (김용수)

 

그럭그럭 기러기 재

울어 헤던 고갯길에

시끄럽게 우는 스마트폰 소리

멀고도 가까운 목소리 들려주고 있다

 

쉼터로 자리한 그 길목

한가위 맞이한 기러기 떼

말을 물어오다 문자를 물어오다

동영상보따리 풀어 재치고 있다

 

그립다 말 못하고

외롭다 울 수 없고

괴롭다 한숨 쉴 수 없는 기러기 고갯마루

쓰다듬고 보듬는 날개깃이 가을비에 젖고 있다

 

아날로그로 살았던 시골길 같은 바늘시계 길

파릇한 고향 땅의 시간들이 느리게 꿰어지고

디지털로 옮겨가는 도시길 같은 숫자시계 길

새까만 타향 땅의 시간들로 빠르게 옭아맨다

 

삶의 흔적남기는 그 속성

짝 잃은 외기러기 그 정조

날면서 글자 쓰는 그 비행술

기러기 잿길에서 울어대던 스마트폰도 모르고 있단다

(김용수의 기러기 고갯마루전문)

 

하늘이 파랗다. 높고 푸르른 가을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유로울 것이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기러기 고갯마루 쉼터에서 바라보는 황금들녘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득량, 예당, 조성들녘이 성큼성큼 다가서는가 하면 검푸른 바닷물이 고흥만과 득량만을 출렁이고 있다.

 

순간, 수식어가 많아지고 있는 이 가을 앞에서 더 이상의 아름다운 문장이 필요할까? 시를 쓰고 있는 필자의 뇌리를 스치면서 기러기의 삶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기러기의 3대 덕목이 각인 됐다.

 

기러기는 다른 짐승들처럼 한 마리의 보스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그런 집단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비행술은 특이하다.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0,000km를 날아가는 비행술을 지녔다. 날아가면서도 글자를 쓰고, 화합과 사랑을 나누는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머나먼 여행을 한다.

 

그 여행 길,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 보다 71%정도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며, 그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느 기러기가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를 도와서 원기가 회복할 때까지 협력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 동료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동료의 마지막까지를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오는 협동심과 의협심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결혼식 폐백 시에 기러기모형의 목각을 놓고 예를 올리는 것은 기러기의 3대 덕목을 상기하자는 뜻이 아닐까 싶다.

 

3대 덕목을 상기해 보면 첫째,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킨다. 보통 수명이 150-200년 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짝 잃은 외기러기를 비유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을 하여 예를 지킨다고 한다.

 

셋째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하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기 위해 질서와 예를 갖춘다는 것이다.

 

어린 날이었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보성 그럭재의 추억은 생생하다. 할머니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러기 고갯길을 넘으면서도 기러기에 관한 이야기만은 끊임이 없었다. 고갯마루에 도달해 숨을 몰아쉬면서도 할머니는 앞산과 뒷산의 형태가 마치 기러기처럼 생겼다하여 기러기 안[)자를 써서 안치(雁峙), 기러기재, 그럭재라 부른단다.”라고 했던 필자의 구씨 할머니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지금은 기러기 재 휴게소로 수많은 차량들이 들락거리며 쉬어가는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 옛날 그럭재는 조그만 소로와 고갯마루를 오르는 샛길이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디지털시대에서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하는 듯 옛 추억이 그리울지도 모른다. 3대 덕목을 지닌 기러기의 삶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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