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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민통선 안에 꼭꼭 숨겨진 '섬 속의 섬으로 여행

기자명 : 김조영 입력시간 : 2018-03-16 (금) 09:38


주문도
조선시대 국영 말 목장 운영하던 섬
민통선에 있어 어로활동 등 규제
'숨은 보석' 대빈창·뒷장술 해수욕장
볼음도·아차도와 다리로 연결 예정

[한겨레]

민통선에 자리잡은 주문도는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역이다 보니 출입은 물론이고 어로활동에 대한 규제도 심하다. 대신 외부인의 손길이 덜 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드론으로 촬영한 주문도 전경. 강화군청 제공

강화 외포리선착장에서 뱃길로 1시간30분쯤 떨어진 주문도는 이웃한 볼음도와 아차도, 말도와 함께 본섬인 강화도에 딸린 섬이다. 주문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조선 중기 명장인 임경업 장군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임금에게 하직하는 글을 이 섬에서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 주문도(奏文島)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물(水)과 임금(主)을 합한 의미를 띠는 ‘注文島’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섬에 전해져 내려온다.

주문도 중심부에 자리잡은 주문1리 마을은 진말(진촌)이다. 우리나라 섬들에는 ‘진’(鎭)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유독 흔한데, 이는 조선시대 수군 주둔지 혹은 관청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혹 나루터의 뜻을 지닌 ‘나루 진’(津)이 붙기도 한다. 주문도에는 과거 주문진(注文鎭)이 있어 주문첨사가 주재하면서 국영 목장을 관리했다.

 

황금어장 앞에 두고도…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옛날 목장지로 쓰이던 섬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있다. 자칫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대목이지만 과거에 말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말 목장은 요즘 세상으로 치자면 자동차 공장이나 고속전철, 방위사업장처럼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이었다. 당연히 나라에서 직접 관장했다. 교통수단과 국방, 무역 등에서 말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주문도의 어미섬인 강화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최대 말 목장지였다. 1817~1826년 사이에 제작된 ‘강화부 목장지도’를 보면, 당시 강화부 관내의 섬 가운데 매음도, 주문도, 자옹도, 신도, 거울도, 보로도(볼음도), 미법도 등 9곳에 목장이 있었다. 섬에 목장을 둔 이유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별달리 경계를 설 필요가 없는데다 키우던 말이나 소가 다른 곳으로 도망칠 염려도 없다. 외부에서 도적이나 맹수가 침범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더군다나 섬은 육지와 달리 인구가 적어, 목장에서 키우는 말이나 소가 주민들의 전답을 휘저으며 농사를 망칠 일도 적은 편이다. 예부터 농토와 물이 풍부한 주문도는 말먹이로 쓸 풀들이 많이 자라는 곳이었다. 게다가 한양과 가까운 위치라 내륙으로 말을 수송하는 데도 편리하다 보니 말 목장 입지 조건이 탁월했다. 주문도에서 키운 말은 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으로 옮겨져 군대와 왕실에 공급되거나 외국에 조공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내가 처음 주문도를 방문한 건 1994년의 일이다. 당시엔 일반 여객선이 서검도를 돌아 주문도를 향했기 때문에 강화 외포리를 떠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주문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서검도를 들르지 않고 곧장 남쪽 항로를 따라가므로 1시간30분이면 섬에 닿을 수 있다. 사람과 차를 함께 싣는 차도선이 운항한다. 과거에 비해 운항시간이 단축됐다고는 해도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주문도를 비롯한 이들 섬은 민통선에 위치한 섬이다.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역이다 보니 출입은 물론이고 어로활동에 대한 규제도 심하다. 어로저지선 때문에 주민들은 황금어장을 눈앞에 두고도 어업과는 아예 담을 쌓은 채 농사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껏해야 백합과 조개, 굴을 조금 따는 정도다. 당연히 외부 관광객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앞으론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주민들에겐 희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사이좋게 나란히 이웃한 주문도와 볼음도, 아차도를 잇는 연도교 건설계획이 발표된 것. 세 섬이 다리로 연결되면 관광객들이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문화유적과 갯벌 체험, 낚시 등 다양한 관광상품도 개발할 수 있다.

사실 주문도엔 숨은 보물이 많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외려 사람의 손길을 덜 탄 두 곳의 해수욕장이 대표적이다. 주문도에는 이름도 특이한 대빈창해수욕장과 뒷장술해수욕장이 있다. 섬의 서북쪽에 위치한 두 해수욕장은 수천년간 서해의 거센 파도가 만들어낸 천혜의 조각품이다. 대빈창해수욕장이란 이름이 붙은 사연도 특이하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교역을 할 때 주문도가 중간 기항지 노릇을 하다 보니 중국 사신과 상인들을 영접하던 곳이라 하여 이리 불렸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느린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입구에 해당화가 피어 있는 대빈창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여름철에도 찾는 사람이 100여명 남짓 된다.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백사장에선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할 수도 있다.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숲을 지나면 천연 잔디구장이 반가이 맞이한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모래사장에는 백합이 많이 서식해 누구나 쉽게 잡을 수도 있다. 바다 저 멀리에선 수평선과 하늘이 만나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대빈창해수욕장엔 산책로와 수도시설이 정비돼 있어 불편함이 없지만 인근에 가게나 민가가 없으므로 필요한 물건은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 교회 남아

뒷장술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섬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어 뒷장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모래사장 길이는 2킬로미터에 이르고 물이 빠지는 간조 때 드러나는 거대한 갯벌에는 조개와 백합 등 다양한 해산물이 즐비하다. 해수욕을 즐기면서 조개 캐기 등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빈창해수욕장이 모래와 자갈이 섞여 이뤄진 곳이라면, 뒷장술해수욕장은 순수하게 모래로 구성된 곳이다.

 

1997년 인천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서도중앙교회(진촌교회)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얼추 100년 전인 1923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한옥 교회로, 팔각지붕을 얹은 홑처마집이다. 외딴섬에 전통적인 목조건물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6·25 동란 중 작전 임무를 수행하다가 강화도 앞바다 주문도에 추락한 B29 폭격기 승무원 13명 중 낙하산으로 내려온 미군 11명을 구출, 목숨을 걸고 안전지대로 생환시킨 서영순씨 등 9명에게 브라운 미국 대사가 훈장과 감사장을 수여했다….’(1964년 10월30일 <동아일보>)

 

‘서해 휴전선 부근 말도에서 조개잡이를 하다가 북한 무장 병사들에게 납치된 어민과 선원 등 122명 중 104명이 피랍 22일 만에 가족 친지들이 고대하는 자유의 땅으로 돌아왔다….’(1965년 11월20일 <동아일보>)

1960년대에 나온 두 건의 옛 기사는 어쩌면 주문도에 덧씌워진 숙명을 여전히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것 같다.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지 못한 현실에서 민통선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섬 주문도가 짊어진 무게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자유와 평화의 시간이 하루빨리 찾아와 주문도를 활짝 웃음짓게 만들기를….

물이 빠진 갯벌에는 조개와 백합 등 해산물이 즐비하다. 이재언 제공
한여름철에도 찾는 사람이 100여명에 불과한 대빈창해수욕장. 이재언 제공
주문도 마을 전경. 어로저지선 때문에 주민들은 주로 농사에 매달린다. 이재언 제공
인천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서도중앙교회(진촌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 교회다. 이재언 제공
대빈창해수욕장 입구.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숲이 반겨준다. 이재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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